나 자신의 게임 불감증과 아니메 편식에 대한 단상 단상

1
난 PS3을 보유하고 있지만 모처럼 찾아오는 휴일에도 좀처럼 켜지를 않는다.
하지만 주말 밤마다 뜨끈하게 샤워를 하고 얼려둔 잔에 냉장고에 꽁꽁 숨겨둔 맥주를 따라 마시며 즐기는 토로스테이션은
내 인생에 작은 낙이 되고 있다.
이런저런 탐방이나 인터뷰, 구루메 기사들은 부담없이 즐겁고 게임 기사도 두 고양이의 개성 넘치는 활약이 참 맘에 든다.
하지만 이 친구들이 재미는 확실히 보장되니 해 보라고 그렇게 권유하건만 실제로 플레이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PS3 블루레이가 한 5~6개는 있는데 거의가 도중에서 멈춰 있다.
유일하게 클리어한 게임도 진엔딩이 아닌 멀티엔딩 중 하나에 불과.

나의 게임 불감증에는 사회생활의 영향이 큰 듯 하다.
학생시절에는 복잡한 스토리와 세계관, 시스템에 열광해서
당시 공식 매뉴얼만 300페이지에다 공략사이트를 1주일 뒤져야 겨우 초보가 된다는 울티마 온라인에도 흠뻑 빠졌는데
지금은 주변 사람들이 게임 안 하냐고 물어보면 '시간도 없고 체력도 없고 피곤해서 못한다'며 쓰게 웃는다.

하지만 이번 연휴를 느긋하게(...아니 그닥 느긋하지 않았나;;) 보내며
실은 정신적 허약함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친다.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주변 환경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그런데 이런 '주거니 받거니'가 때로는 복잡하고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이 사회생활이다.
그래서 어떤 결정('주거니')을 내릴 때는 신중할 수 밖에 없고, 아무리 조심해도 때로는 강펀치가 되어 돌아오기도 하니
그런 결정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MMORPG 같이 그 안에 작은 사회를 구현한 게임보다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주거니 받거니'가 매우 단순하고 그 영향이 극히 제한적인 게임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출퇴근길 지하철을 보면 그런 경향은 극명하게 나타난다. (물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것도 원인이지만)

최근 나도 아이팟으로 게임을 조금씩 즐기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빠져들었던 것은
NDS판을 아이폰 버전으로 이식한 '만지는 탐정 오사와 리나'의 부록 격인 버섯재배(...) 게임이다.
시간에 맞춰 버섯을 캐는 단순한 반복동작이 폭발 직전의 머리에 작은 증기구멍이 된다.
복잡한 마법체계나 던전별 몹의 어그로 위치나 레이드시 루팅 룰을 머릿속에 구겨넣지 않아도 되고
다른 플레이어와 의견충돌이나 감정 상하는 말싸움에 끼어들지 않아도 된다.
그런 건 이미 현실에서 질리도록 겪고 있으니까, 몇십 분 만이라도 '떠나고 싶다'.

2
떠나고 싶은...도피욕구는 아니메 장르에 대한 선호 역시 바꿔놓는다.
나의 경우 예전에는 스토리라인이 분명하고 강렬한 캐릭터들이 번쩍번쩍 맞부딪히거나
속깊은 메세지를 끌어낼 수 있는 작품들을 좋아했다.
내가 마마마를 그 시절에 접했더라면 한 방에 훅 갔을 테지만
지금은 '이건 한 시대를 풍미할 것이다' 하면서 소장용 블루레이를 질러 놓고는 비닐도 뜯지 않은 채로 묵혀 놓고 있다.

그럼 지금은?
스토리가 전무나 다름없거나 있더라도 인물 간의 갈등이 극히 적은 게 좋다.
그런 기준에 딱 들어맞았던 '케이온!'조차 10화, 아니 11화던가...리츠와 미오가 싸우는 화는 제껴버렸을 정도이다.
지금은 서비스가 적당히 가미된 개그물이 딱 취향인 듯.
7월에는 바시소와 유루유리를 즐겨 보았고, 10월에는 일단 오징어소녀를 점찍어 놓았음.
반면 슬레이어즈로 시작되었던 검과 마법의 판타지에 대한 동경은 꽤 식었다. 왜냐하면...
내 착각일 지도 모르겠지만 판타지 세계일수록 오히려 주제의식은 현실적인 경우가 많고
평범한 학교나 마을을 배경으로 하면서 의식불명의 정신나간 전개를 보이는 작품도 꽤 있는 듯 하다. 선레드라던가 일상(...)
현실은 어차피 시궁창. 잠시나마 좀 잊을 수 있게 해 주세요.

3
현실을 건드리는 스토리를 읽거나 보거나 만지고, 그것이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그 해석과 주관이 후에 역경을 버텨내는 백신으로 작용한다.
지금의 사회인들이 다 그렇지는 않을 테지만, 아니 어쩌면 나만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백신조차도 버텨내지 못하는 허약체질이 되어 항생제로 연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p.s. 다 쓰고 나니 글이 검색어 낚시같이 되어 버렸군요. 낚여서 들어오신 분들께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하얀 고래 창작




하얀 고래가 날 쫓아오고 있다
낮에는 진땀을 흘리며 도망가야만 하고
밤에는 식은땀을 흘리며 가위눌려야만 하는

여유롭게 찬 바다를 휘저어야 할 고래는
앙상하게 손가락뼈가 드러난 지느러미로 내 머릿속을 온통 일그러뜨려 놓는다
하얗게

하얘지는 머리를 움켜쥐고
오로지 뛰는 발에 몽롱한 의식을 애써 모아 보다
결국에는
온통 하얀 세계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마비의 안식

하얀 고래가 날 쫓아내고 있다
고맙다
그런데 어째선지 숨이 차다


닭날갯짓 창작



상현

이름모를 성좌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
푸근한 어둠


우격다짐 창작



아저씨가 되렵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살렵니다
관속에 누웠을 때 갑갑해 하지 않도록


마도카☆마기카, 앞으로의 전개를 맞춰 봅시다 애니

보통은 애니 방영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정리된 생각과 가물가물한 기억을 가지고 감상문을 쓰는 게 보통인데
이건 방영 초반인데도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네요(...)
2ch 누군가의 말처럼 (그것이 맞든 틀리든) 다음의 전개를 맞춰 보는 재미가 있는,
오리지널의 강점을 제대로 살린 애니인 듯 합니다.

뭐 넷상에서 이미 어두운 전개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팽배해 있었기에
그 어두움이 어떤 형태로 전개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봤더랬습니다.

2화까지를 놓고 봤을 때는 하이누벨레의 모티프를 극한까지 밀고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이누벨레는 인도네시아 신화의 여신으로 사람들에게 토막살해(...) 당해서 땅에 묻히는데
거기서 감자(토란?)가 자라나서 그 쪽 사람들이 감자를 먹고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라는 신화.

그러니까 하이누벨레의 모티프는 '누군가의 삶은 다른 누군가의 죽음에 발딛고 서 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좀더 확장하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는 정의로운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것을 앗아가 버리는 불의가 된다거나
자신은 아무런 악의를 갖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인데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끼친다거나 하는.

1화에서 '마력의 원천이 무엇인가'가 이 애니의 키 포인트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었는데
그것이 2화에서 소울 젬과 그리프 시드의 관계를 통해 어느 정도 해명되었죠.
새로운 마법소녀의 존재 자체가 다른 마법소녀들의 존속을 위협합니다.
2화까지만 봤을 때의 예측은 마도카나 사야카에게 커다란 위기가 찾아오고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둘이 동시에 대마법을 시전한다거나 해서 전체적으로 마력이 고갈되고
서로 흑화(?)를 피하려 그리프 시드를 놓고 피도 눈물도 없는 생존을 위한 싸움을 벌이는 게 아닐까?...였습니다.

또한 이런 하이누벨레적인 전개를 극도로 꺼려하는 이상주의자가 호무라가 아니었을까 싶었지요.
비록 자신은 이미 수렁에 발을 담근 상태이지만.
마도카에 대한 경고는 너만은 카이지식 생존게임을 피하게 하고 싶다...라는.
어떻게 보면 아이가 티없이 자라길 원하는 부모님의 이뤄질 수 없는 이상이 투영된 것일 수도 있고,
마도카 공식HP 호무라의 샘플 보이스('넌 관계 없는 일반인을 위험에 말려들게 하고 있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마도카의 마법, 아니 마법소녀의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 위험과 불안을 가져다주는 요소이므로 제거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자기혐오 내지는 부정일 수도 있구요.

네 그리고 3화를 봤습니다. 3화입니다.
(네타가 있기에 가립니다...만은 이미 다 알고 계실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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